우리다산
마을소개
호촌1리
- 작성 : 다산면
- 2010-02-03 15:56
- 조회 674
ㆍ마을역사: 인조(仁祖1623~1649)때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120여년 전에는 늪마을이라 하다가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지며, 이 호수는 약500년 전 낙동강 홍수로 인해 생겨졌다고 한다. 지금도 곽촌, 호촌, 좌학, 월성 지역에 샛강이 흐르고 있어 그 흔적으로 추정된다.
고정(광무10년, 1906년)때 고령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천동, 사동, 사문동 이라 하였다.
1966년 호촌동을 호촌1동, 호촌2동으로 분등 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 이 리(里)로 바뀌었다.
○ 일반현황
- 장두말리, 장도촌, 장두만리 : 다사지현(多斯只弦)때 군사를 훈련
시키던 장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늪마을, 호촌, 훑촌 : 낙동강 홍수로 인해 늪이 많아 늪마을, 큰호수로
인해 호촌, 낙동강 범람때 흙이 이곳 흙을 많이 훑어 갔다고 훑촌 이라고
불렀다.
고정(광무10년, 1906년)때 고령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천동, 사동, 사문동 이라 하였다.
1966년 호촌동을 호촌1동, 호촌2동으로 분등 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 이 리(里)로 바뀌었다.
○ 일반현황
- 장두말리, 장도촌, 장두만리 : 다사지현(多斯只弦)때 군사를 훈련
시키던 장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늪마을, 호촌, 훑촌 : 낙동강 홍수로 인해 늪이 많아 늪마을, 큰호수로
인해 호촌, 낙동강 범람때 흙이 이곳 흙을 많이 훑어 갔다고 훑촌 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