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산
마을소개
호촌2리
- 작성 : 다산면
- 2010-02-03 15:56
- 조회 686
ㆍ마을역사 : 인조(仁祖1623~1649)때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120여년 전에는 늪마을이라 하다가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지며, 이 호수는 약 500년전 낙동강 홍수로 인해 생겨졌다고 한다. 지금도 곽촌, 호촌, 좌학, 월성 지역에 샛강이 흐르고 있어 그 흔적으로 추정된다.
1900년초 임수동(林壽東)이라는 선비가 개척했다고 하며, 고종(광무10년, 1906년)때 고령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66년 호촌동을 호촌1동, 호촌2동으로 분동, 1988년 5월 1일동(洞)이 리(里)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일반현황
- 장두말리, 장도촌(將刀村), 장대말리 : 늪마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들의 이름과도 같다. 다사지현(茶斯只縣)때 군사를 훈련시키던 장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 지번은 곽촌리 지번이나 마을은 호촌1리에 소속되어있다.
- 사문(沙門), 사문(寺門) : 낙동강 홍수로 인해 마을이 이루어져 동쪽마을(호촌2리)는 모래가 많고 다산면 가는 관문이라 사문, 사촌이라고 붙여졌다. 또한 큰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문(寺門)이라고도 불려졌다
1900년초 임수동(林壽東)이라는 선비가 개척했다고 하며, 고종(광무10년, 1906년)때 고령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66년 호촌동을 호촌1동, 호촌2동으로 분동, 1988년 5월 1일동(洞)이 리(里)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일반현황
- 장두말리, 장도촌(將刀村), 장대말리 : 늪마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들의 이름과도 같다. 다사지현(茶斯只縣)때 군사를 훈련시키던 장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 지번은 곽촌리 지번이나 마을은 호촌1리에 소속되어있다.
- 사문(沙門), 사문(寺門) : 낙동강 홍수로 인해 마을이 이루어져 동쪽마을(호촌2리)는 모래가 많고 다산면 가는 관문이라 사문, 사촌이라고 붙여졌다. 또한 큰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문(寺門)이라고도 불려졌다